1836년 12월 21일, 조지아 주의회에서 중서부에서 애틀랜타로 통하는 무역 루트를 위해 철도 건설을 결정했다. 1842년 즈음 6개의 빌딩이 세워지고 30명의 주민이 생겼다. 이 도시의 첫 이름은 "Marthasville" 였다. 몇번 이름을 더 바꾸다가, 조지아 철도의 수석 엔지니어 Edgar Thomson이 "Atlantica-Pacifica"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고, 짧게 "Atlanta"가 되었다. 주민들이 이 이름에 동의하면서 1847년 12월 29일 드디어 애틀랜타가 탄생했다.


철도가 건설되면서 애틀랜타행 붐이 생겨 인구가 2,500명이 되었다. 1848년에는 첫 시장선거를 했고, 최초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교도소도 건설했다. 사이드웍을 만들고 보안관도 임명했다. 1854년에는 애틀랜타에서 라그랑지까지 철도를 연결하고, 인구는 7,741명까지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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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기간동안 애틀랜타는 철도와 군수물자의 중요 이동통로였다. 1864년, 유니언(Union, 미연방) 군대의 주요 타겟이 되었다. 애틀랜타 중심에서 여러차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The Battle of Peachtree Creek, the Battle of Atlanta, the Battle of Ezra Church). 1864년 9월 1일, 유니언에 포위돼 4개월 동안의 공격을 받던 남부연합(Confederate State of America)의 존 벨 후드 장군은 애틀랜타의 모든 건물과 자산을 파괴하고 애틀랜타를 비우기로 결정했다. 9월 7일, 유니언 장군 셔먼은 시민들이 모두 대피한 후 교회와 병원을 제외한 애틀랜타의 모든 것을 완전히 파괴시켰다. 남쪽으로 진군하면서 본보기로 삼은 것이다.   


도시 재건은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 1867년부터 1888년까지 애틀랜타 남서쪽에 있는 McPherson Barracks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재건을 도왔다. 연방정부는 해방된 노예들을 돕기 위해 Freedmen's Bureau를 설립했고, 흑인 대학인 Clark Atlanta University도 이 기관에서 설립했다.


1868년, 애틀랜타를 조지아주 수도로 지정했다. 1880년대에는 Georgia School of Technology와 Atlanta Hospital을 설립햇다.


애틀랜타가 성장하면서 인종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1906년에 발생한 애틀랜타 인종 폭동중에 27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부상했다. 1913년에는 Leo Frank라는 유태인이 13살의 백인 소녀를 살해해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남동부 지역 군인들이 애틀랜타를 거쳐 파병되고 포트 맥퍼슨(Fort McPherson)에서 퇴역하고 했다. 마리에타에 있는 벨 비행기 제조공장 같은 군수 공장들이 늘어나면서 인구와 경제가 살아났다. 전쟁 후에는 CDC(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애틀랜타에 자리잡았다. 


인종갈등 문제가 여전히 중요 이슈가 되면서, 1958년 10월 12일에는 피치트리 거리에 있는 유대 사원이 폭탄테러 공격을 받았다. Confederate Underground라 주장하는 반유대 백인 지상주의자들이 본인들의 소행이라 주장했다. 



1996summerolympicslogo.jpg1960년대는 애틀랜타가 미국 흑인민권운동(US Civil Rights Movement)의 중심지가 되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애틀랜타 흑인 대학의 학생들이 중심에 섰다. 1960년 10월 19일, 애틀랜타에 있는 백화점에서 연좌농성을 하다 킹 목사와 학생들을 체포되었다. 이 일로 인해 전국적인 관심을 더 받게 되었다.  1961년에는 백인 시장이었던 Ivan Allen Jr이 애틀랜타 공립학교에서의 흑백 차별 반대를 지지하고 나섰다. 1961년 9월 7일, 애틀랜타에서 흑백 분리가 철폐되었다.


1990년, 애틀랜타가 1996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미국내에서 3번째 하계 올림픽 개최 도시가 된 것이다 (다른 두 도시는 세인트 루이스, 로스앤젤리스). 이를 계기로 도심 공원, 스포츠 시설, 교통, 통신망 등 대대적인 건설 붐이 일었다. 다운타운의 센트럴 올림픽 파크도 이때 건설되었다.


올림픽을 계기로 애틀랜타는 신흥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새로운 건물, 새로운 도시, 새로운 시스템으로 미국내에서도 보기 드믄 신생 대도시가 된 것이다. 역사적 흔적은 미국내 다른 도시보다 부족하고, 유럽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새로움에 관해서는 어느 도시보다도 앞선다. 


애틀랜타는 미국의 신도시이다.